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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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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성사 생애

원효는 서기 617년 압량군 불지촌(현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지역)에서 담날(談捺)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효의 속가 성은 설씨이다. 설씨는 신라의 6두품에 해당하는 신분계급이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가 원효를 잉태할 때 유성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으며, 그를 낳을 때는
오색의 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한다. 원효의 아명은 서당(誓幢)이라 하였다.

서당은 ‘첫새벽’을 뜻하는데 그의 의미 그대로 비단 한국의 불교사상만이 아니라 철학사상 일반에 있어서도
큰 새벽을 연 밝은 별이었다. 원효는 사라수 라는 밤나무 아래서 태어났다고 삼국유사에 전해진다.
이는 석가모니와 같은 출신배경이라 관심이 가져진다.

출가

원효는 15세 나이로 출가를 결심한다. 불지촌에서 성장한 15세 소년 서당이 무슨 생각과 계기로 출가를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분명한 기록은 없다. 그 중 가장 신빙성이 있는 두 가지를 살펴보겠다.
한가지는 출가 이전에 화랑으로 상정되어 전쟁에 출전했던 그가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유한적 존재의 극한을
경험함으로써 죽음 저편의 무한을 추구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이 추측에 대한 근거는 미약하다. 진골의 신분이라야 가능하던 화랑이 되기에는 원효의 신분에 현실적으로
제약이 따랐을 것이다.
또 다른 한가지는 불교의 신앙 속에서 골품의 신분적 차별을 초월하는 높은 경지를 체득하려 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그것이다. 당시 중앙 고위의 관직에는 나아가기 어려운 출신 신분상의 제약을 받고 있던 6두품 출신들이 대체로 종교나
학문적인 면으로 진출했음을 유의 해볼 때, 오히려 이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구도의 길

원효는 진평왕대(579~631) 말기에 그의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7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이때는 통일 전야로 신라의
젊은이들의 활동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왕성했다.
이들은 목숨을 던져 정의를 지키고, 꽃다운 이름과 아름다운 행동을 본받기를 기꺼이 했다.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원효 또한 누구보다도 가슴속에 큰 불덩이를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원효성사 관련 이미지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소재 제석 입구에 서있는 것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을 원효스님의 탄생지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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